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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5건)

명덕재
명덕재(明德齋)는 광산구 임곡동에 창녕 조씨(昌寧曺氏) 송암(松庵)  조언수(曺彥壽)를 기리는 제각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옛 나주군 본량면이다.1938년에 발간한 조선환여승람 나주(朝鮮寰輿地勝覽 羅州)편에 전하고 있어 1897~1938년 기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명덕(明德)은  대학(大學)의 첫머리
창운정
창운정(昌雲亭)은 충주 지씨(忠州池氏) 재실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에 있었다.1935년에 편찬한 《조선환여승람》에 전하고 있어 이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학심정사(學心精舍)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본래 광주군 두방면(斗坊面) 지역으로서 길가에 있는 말머리처럼 생긴 큰바위인 말바우를 한자지명으로 풀어 두암(斗岩)이라 했다.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진 두암동은 장원봉에서 달려온 용이 군왕봉(356m)에 이르러 좌우로 뻗쳐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우산동의 소산·무냉이등· 범덕등이 북서쪽
읍취정 挹翠亭 2
북구 비엔날레로 133-1 (용봉제) 학암 안희직(1556~1618)은 읍취정을 지어 향사우鄕士友들과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연구했으며, 산수를 좋아하고 세파에 흔들림 없이 자기 수양에 힘썼다는 내용이 조선환여승람(1935)에 기록되어 있다. 문혜공文惠公 안원형安元衡의 후예로 조봉대부朝奉大夫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의 관
월파정(月波亭)
전남 나주 월파정(月波亭), 평동면의 박국보(朴國輔)가 지어 지냈던 곳이다.지금은 사라지고 1935년에 편찬한 조선환여승람에 전하고 있다. 평동면은 1949년에 삼도면과 본량면, 평동면을 광산군으로 이속시키고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을 말한다.  “월파정 아래에 목란의 배를 띄우리라 月波亭下泛蘭舟”
양호재(養浩齋)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에 양호재(養浩齋) 정한겸(鄭漢謙)이 지어 지냈던 곳이다.   1935년에 충남 공주(公州)의 유학자인 이병연(李秉延, 1894∼1977)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전하고 있다. 양호(養浩)는 ‘호기를 기른다.(養浩氣), 즉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송하재 松荷齋
북구 북쪽 10리송하재는 조선환여승람(1938)에는 효지면 송하리의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였던 심순성沈舜省의 후손인 북구 일신마을 심영택沈英澤(1810~?)과 심환택沈煥澤 형제가 건립한 담락처였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10리, 광주향교 광주읍지(1925)에는 서쪽 10리에 있다고 한다.참판 심계택沈啓澤의 기문을
서은정 瑞隱亭
북구 망월동   서瑞는 상서롭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서은정瑞隱亭은 박윤하朴潤夏가 북구 망월동에 지어 지냈으나 사라지고 없다.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다. 1904년 4월 6일 성균관박사로 임명되었다가 4월 9일 의원면직된 박윤하朴潤夏가 동일 인물 여부는 검토가 필요하다.  
도담정사 陶潭精舍
동구 지산동   동쪽으로 5리에 있으며 구단舊丹 사동砂洞 서암瑞岩 조병훈趙秉勳이 지어 지냈던 곳으로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다. 화순 능주 광덕리 출신 방은(芳隱) 임호응(林鎬應, 1870~?) 등이 다녀가며 시를 남겼다고 전한다. 임석주(林碩周)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나주의 신 모에게서 수업을
경암정 耕庵亭
북구 석곡동경암정은 유학자이며 참봉을 지낸 경암(敬庵) 정민석(鄭珉錫, 1866~ ?)이 지었다. 《조선환여승람》(1935)에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교리였던 지고(止皐) 고의상(高儀相 1833 ~1906)이 지은 기문이 남아 있다고 전하고 있어 구한말에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 주인은 본관이 경주로 노사 기정진의 손자이며
경성재 警省齋
광산구 선암동 황룡강변금호錦湖 최원택崔元澤(1862~1933)이 지어 지냈다는 경성재는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어 그 이전에 지어진 정자로 보인다. 정자 이름인 경성警省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깨우쳐 돌아보고 살핀다. 깨닫다. 경계(警戒)하며 조심하며 명심(銘心)하다'는 의미이다.조선 후기의 실학자이
가헌정 稼軒亭
남구 주월동광주읍지와 조선환여승람에 이 정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남구 주월동에 가헌稼軒 김판석金判錫이 창건했고 후석 오준선의 찬기가 있다[在州西 珠月里 金判錫所搆 有原韻 後石 吳駿善 撰記]고 하였다.김판석은 참봉, 도정 등의 벼슬에 재임했다고 하나 실직이 아닌 수직(추천)을 받은 명예직으로 보인다. 가헌은
덕호재
서구 덕흥로 312(덕흥동)극락강변에 유유자적하며 금성錦城(나주) 송암거사 오길주吳吉柱가 지냈던 곳이나 지금은 금성오씨 재각인 덕호재德湖齋로 대신하고 있다. 학사 민병한閔丙漢이 쓴 기문이 『조선환여승람』(1935)에 남아 있어 이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후손인 오동수吳東洙의 찬기가 있다.지금은 빨간 벽돌
금호정사
서구 금호동 광주읍 명치정明治町의 최원택崔元澤이 지냈던 곳이 금호동의 금호정사錦湖精舍이다. 명치정은 지금의 금남로 일대이다. 최원택의 자는 도경道京, 호는 금호錦湖, 본은 탐진이며 벼슬은 참봉이다. 당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1833~1906) 유인석柳麟錫은 항일투쟁을 위해 순천 낙안 흥양 여수 돌산 광양 장흥 보
오로정
서구 덕흥동 오로정五老亭은 조선환여승람(1938)에 노헌老軒 최성장崔性璋, 노암老菴 정재진鄭在鎭, 노와老窩 정인석程寅錫, 노재老齋 조정섭曺正燮, 노당老堂 유동석劉東錫 5인들의 소요처였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나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다. 다섯 사람 호의 앞 글자를 다서 오로정이라 했다.오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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